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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고요의 해부학

작성 :

김윤석 원장
라사요가원 원장
한국치유요가협회 연수위원장 / RYTK300+과정 요가해부학 강사
국제통합테라피학회 IAIT 근골격신경계 치유그룹 요가해부학 연구위원장
[안락동 요가일기] 저자

최종 수정일 :

최초 작성일 :

2025년 12월 1일

2025년 12월 1일

전문감수 :

컴퓨터가 백그라운드에서 수십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리는 이미지

수련실의 불을 끄고 매트를 정리하며 하루를 마감하던 어느 저녁이었다. 몸은 분명 멈추었는데, 머릿속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오늘 수업 중 회원의 불편해 보이던 어깨는 좀 나아졌는지, 내일 마감인 원고의 첫 문장은 어떻게 떼야 할지, 지난달의 아쉬움과 다음 달의 막막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뉘었지만, 이상하게도 피로는 가시지 않았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쉬었는데도 월요일 아침이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분명 몸은 멈추어 있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지쳐있는가?


해답의 실마리는 우리의 뇌에 있다.


뇌는 전체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신체 에너지의 20%를 소비하는, 가장 대사 활동이 활발한 기관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 추가로 소비되는 에너지가 기저 에너지의 5%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즉, 뇌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막대한 에너지를 쓰며 끊임없이 작동한다.


문제는 에너지의 양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쓰느냐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영역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고 부른다. 이 네트워크가 주로 하는 일은 시간 여행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지금’에 집중하지 않을 때, 뇌는 습관적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하거나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며 불안해한다.


컴퓨터가 백그라운드에서 수십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리면 어떻게 될까. 전력 소비는 비슷하지만 시스템은 느려지고 과열된다. 뇌도 마찬가지다. 같은 에너지를 쓰더라도, 그것이 비생산적인 반추와 걱정에 쓰일 때 우리는 소모감을 느낀다. 몸은 현재에 머물러 있지만, 뇌는 끊임없이 시공간을 방랑하며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수천 년 전, 요가의 경전 『요가 수트라』는 요가를 ‘치타 브리티 니로다(Citta Vritti Nirodha)’, 즉 ‘마음 작용의 멈춤’이라 정의했다. 고대의 수행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 마음을 가만히 두면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로 소용돌이친다는 사실을. 그들이 말한 ‘마음의 소용돌이’가 바로 현대 과학이 밝혀낸 DMN의 폭주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소용돌이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우리 뇌에는 DMN과 다른 역할을 하는 ‘작업 긍정 네트워크(Task Positive Network, TPN)’가 존재한다. 무언가에 깊이 몰입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망이다. 이 두 네트워크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경쟁 관계에 있다. 의도적으로 감각에 집중하여 TPN을 활성화하는 순간, 과도하게 활성화되었던 DMN은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요가의 마지막 단계인 명상(Dhyana)은 바로 이 전환을 일으키는 정교한 기술이다. 매트 위에서 “코끝을 스치는 숨의 마찰음을 느끼라”거나 “바닥에 닿은 엉덩이의 무게감을 바라보라”는 안내는 단순한 지시가 아니다. 주의력을 호흡의 감촉이나 피부의 온도라는 명징한 현재로 가져오는, 닻을 내리는 과정이다.


이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멈춤이 일어난다.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쓰이는 방식이 바뀐다. 과거와 미래로 흩어지던 에너지가 회수되어 오롯이 지금, 여기로 모인다. 비생산적인 시간 여행에 소진되던 자원이 현재의 경험을 온전히 처리하는 데 쓰인다. 뇌의 소란함이 잦아들고, 내면의 고요가 찾아온다.


한 해의 끝자락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더 채우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컵이 가득 차 있으면 더 맑은 물을 담을 수 없듯, 뇌도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겨울, 따뜻한 찻잔의 온기를 손끝으로 온전히 느끼거나 옷깃을 스치는 겨울바람을 알아차려보자.


그 짧은 멈춤의 순간, 뇌는 비로소 쉰다. 그 빈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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